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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혜연선사 발원문(怡山慧然禪師 發願文)은 한국 불교 예불에서 가장 널리 독송되는 발원문 중 하나입니다. 원 저자는 8세기 당나라의 선승 이산교연(怡山皎然) 선사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 복건성 복주 출신으로 장생산에 거주하여 장생교연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독송하는 아름다운 우리말 번역은 동국역경원 초대 원장을 지낸 운허 스님(1892~1980)이 하셨으며, 원작을 능가하는 세련된 번역이라는 평을 받아 전국 사찰에서 통일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발원문은 나옹혜근선사의 행선축원문과 함께 한국 불교의례에서 가장 많이 독송됩니다. 관세음보살의 크나큰 자비로 시방세계를 다니며 많은 중생을 건지겠다는 서원을 담고 있으며, 지성귀의에서 시작하여 업장참회, 발원, 수행의 다짐, 중생제도, 종지성취로 이어지는 짜임새 있는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산혜연선사 발원문 전문
시방삼세 부처님과 팔만사천 큰법보와
보살성문 스님네께 지성귀의 하옵나니
자비하신 원력으로 굽어살펴 주옵소서
저희들이
참된성품 등지옵고 무명속에 뛰어들어
나고죽는 물결따라 빛과소리 물이들고
심술궂고 욕심내어 온갖번뇌 쌓았으며
보고듣고 맛봄으로 한량없는 죄를지어
잘못된길 갈팡질팡 생사고해 헤매면서
나와남을 집착하고 그른길만 찾아다녀
여러생에 지은업장 크고작은 많은허물
삼보전에 원력빌어 일심참회 하옵나니
바라옵건대
부처님이 이끄시고 보살님네 살피옵서
고통바다 헤어나서 열반언덕 가사이다
이세상의 명과복은 길이길이 창성하고
오는세상 불법지혜 무럭무럭 자라나서
날적마다 좋은국토 밝은스승 만나오며
바른신심 굳게세워 아이로서 출가하여
귀와눈이 총명하고 말과뜻이 진실하며
세상일에 물안들고 청정범행 닦고닦아
서리같이 엄한계율 털끝인들 범하리까
점잖은 거동으로 모든생명 사랑하여
이내목숨 버리어도 지성으로 보호하리
삼재팔난 만나잖고 불법인연 구족하며
반야지혜 드러나고 보살마음 견고하여
제불정법 잘배워서 대승진리 깨달은뒤
육바라밀 행을닦아 아승지겁 뛰어넘고
곳곳마다 설법으로 천겹만겹 의심끊고
마군중을 항복받고 삼보를 잇사올제
시방제불 섬기는일 잠깐인들 쉬오리까
온갖법문 다배워서 모두통달 하옵거든
복과지혜 함께늘어 무량중생 제도하며
여섯가지 신통얻고 무생법인 이룬뒤에
관음보살 대자비로 시방법계 다니면서
보현보살 행원으로 많은중생 건지올제
여러갈래 몸을나퉈 미묘법문 연설하고
지옥아귀 나쁜곳엔 광명놓고 신통보여
내모양을 보는이나 내이름을 듣는이는
보리마음 모두내어 윤회고를 벗어나되
화탕지옥 끓는물은 감로수로 변해지고
검수도산 날선칼날 연꽃으로 화하여서
고통받던 저중생들 극락세계 왕생하며
나는새와 기는짐승 원수맺고 빚진이들
갖은고통 벗어나서 좋은복락 누려지다
모진질병 돌적에는 약풀되어 치료하고
흉년드는 세상에는 쌀이되어 구제하되
여러중생 이익한일 한가진들 빼오리까
천겁만겁 내려오던 원수거나 친한이나
이세상의 권속들도 누구누구 할것없이
얽히었던 애정끊고 삼계고해 뛰어나서
시방세계 중생들이 모두성불 하사이다
허공끝이 있사온들 이내소원 다하리까
유정들도 무정들도 일체종지 이루어지이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이산혜연선사 발원문 해설
지성귀의 — 시방삼세 부처님과…
발원문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모든 부처님과 팔만사천의 법보, 그리고 보살과 성문 스님들께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시방은 동서남북 사방과 사유(四維), 위아래를 합친 온 우주의 모든 방향을 뜻하고, 삼세는 과거·현재·미래입니다. 한 곳, 한 시간에 국한된 귀의가 아니라 온 시공에 계신 모든 가르침의 원천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자비하신 원력으로 굽어살펴 달라는 청원으로 마무리되는 이 첫 단락은, 발원문 전체를 받쳐주는 귀의(歸依)의 토대입니다.

업장참회 — 저희들이 참된성품 등지옵고…
발원문의 두 번째 단락은 솔직하고 깊은 자기 성찰입니다. 참된 성품을 등지고 무명(無明) 속에 뛰어들어, 생사의 물결을 따라 빛과 소리에 집착하고, 욕심과 번뇌를 쌓아왔음을 고백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보는 감각 작용들이 모두 집착의 통로가 되어 한량없는 죄를 지어왔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을 갈팡질팡하며 나와 남을 집착하고 그른 길만 찾아다닌 여러 생의 업장을 삼보 앞에 일심으로 참회합니다. 참회는 죄를 고백하는 행위이지만, 더 깊게는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용기입니다.

열반발원 — 바라옵건대 고통바다 헤어나서…
참회에 이어 발원이 시작됩니다. 부처님이 이끌고 보살님이 살펴주셔서 번뇌의 고통 바다에서 벗어나 열반의 언덕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열반은 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바다에서 건너가는 피안(彼岸)입니다. 이 세상의 명과 복이 창성하고, 오는 세상에서는 불법의 지혜가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는 서원도 담겨 있습니다.

동진출가 — 날적마다 좋은국토 밝은스승 만나오며…
태어날 때마다 좋은 국토에서 밝은 스승을 만나고, 어린 나이에 바른 신심으로 출가하기를 서원하는 부분입니다. 귀와 눈이 총명하고 말과 뜻이 진실하며, 세상일에 물들지 않고 청정한 범행을 닦아 서리처럼 엄한 계율을 털끝만큼도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습니다. 이산교연 선사 자신이 어린 나이에 출가한 동진(童眞) 출가를 찬탄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생명보호 — 점잖은 거동으로 모든생명 사랑하여…
짧지만 강렬한 구절입니다. 점잖은 거동으로 모든 생명을 사랑하되, 내 목숨을 버려서라도 지성으로 그들을 보호하겠다는 서원입니다. 불교의 불살생(不殺生) 계율이 단순한 금지를 넘어 적극적인 생명 사랑의 실천으로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대승수행 — 삼재팔난 만나잖고…
삼재팔난을 만나지 않고 불법 인연을 구족하기를 서원하며, 반야지혜가 드러나고 보살심이 견고해지기를 바랍니다. 부처님의 정법을 배워 대승 진리를 깨닫고, 육바라밀 행을 닦아 아승지겁을 뛰어넘으며, 곳곳에서 설법으로 의심을 끊고 마군을 항복시켜 삼보를 잇겠다는 웅대한 서원이 이어집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섬기는 일을 잠깐도 쉬지 않겠다는 정진의 다짐도 담겨 있습니다.

중생제도 — 관음보살 대자비로 시방법계 다니면서…
발원문의 절정입니다. 온갖 법문을 다 배워 통달하고, 복과 지혜를 함께 늘려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겠다고 합니다. 관음보살의 대자비로 시방법계를 다니면서, 보현보살의 행원으로 많은 중생을 건지겠다는 서원이 이어집니다. 여러 모습으로 몸을 나투어 미묘한 법문을 연설하고, 지옥과 아귀 같은 나쁜 곳에서도 광명을 놓고 신통을 보여 내 모양을 보거나 내 이름을 듣는 이가 모두 보리심을 내어 윤회의 고통을 벗어나게 하겠다고 합니다. 화탕지옥의 끓는 물은 감로수로 변하고, 칼날이 서 있는 검수도산은 연꽃으로 변하여 극락세계로 왕생하게 하겠다는 이 구절은 발원문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기도 합니다.

중생이익 — 모진질병 돌적에는 약풀되어 치료하고…
전염병이 돌 때는 약풀이 되어 치료하고, 흉년이 드는 세상에는 쌀이 되어 구제하겠다는 서원입니다. 추상적인 자비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고통 앞에 직접 응답하는 보살행의 모습입니다. 여러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하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됩니다.

종지성취 — 천겁만겁 내려오던 원수거나 친한이나…
발원문의 마지막은 온 중생을 향한 포괄적인 서원으로 마무리됩니다. 오랜 세월 원수였거나 친했거나, 이 세상의 권속이거나 할 것 없이, 누구 하나 빠짐없이 얽히었던 애정을 끊고 삼계의 고해를 벗어나 모두 성불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허공이 다할 때까지 이 소원이 다하지 않기를 바라며, 유정과 무정 모두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이루기를 서원합니다. 일체종지란 모든 것을 두루 아는 부처님의 지혜입니다. 나 혼자의 깨달음이 아니라,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까지 포함한 모든 존재의 성불을 바라는 것으로 발원문은 끝납니다.
이 발원문이 천 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 오늘도 예불 때마다 독송되는 것은 내용의 깊이 때문만이 아닙니다. 운허 스님의 번역이 만들어낸 유장하고 아름다운 우리말 리듬이, 발원문을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 그 서원을 자연스럽게 스미게 하기 때문입니다. 발원이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 내어 읽으면서 몸으로 새기는 것임을 이 발원문은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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